우전왕이 아난다에게 물었습니다. "존자께서는 가사가 닳아 떨어져 못쓰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보자기를 만듭니다." "그것도 못쓰게 되면 어떻게 합니까?" "베개 주머니를 만듭니다." "헌 베개 주머니는 버립니까?" "아닙니다. 걸레를 만듭니다" "그 걸레 조차 못 쓸 정도가 되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는 그 헌 걸레를 잘게 썰어서 진흙에 섞은 후 집을 수리 할 때 벽을 바르는 데 사용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에 비구 스님들이 얼마나 절약하고 살았는가를 보여주는 단편적인 일화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사용하는 생활용품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풍조에 물들어 왔습니다. 필요 이상의 물건을 충동적으로 사거나 번듯한 가재도구를 싫증이 난다고 바꾸기 일쑤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것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외국 물건만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아껴쓰고 나누어 쓰고 서로 바꾸어 쓰고 다시 한번 생각해서 쓰는 생활의 태도를 우리 국민들이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복 받는 민족이 될 수 없습니다. 복은 검소함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나는 왜 이다지도 박복할까"하고 탄식만 늘어놓고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을 먼저 깨달아야합니다. 사치하고 허영하는 사람들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지금 부지런히 복을 까먹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사치하는 사람들은 내면적인 삶보다 외향적인 삶에 더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결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부자라도 3대를 이어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질의 탐욕과 욕망의 해소에 전념하는 사람은 더욱 빨리 자기의 복을 다 까먹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