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성뉴스 / 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48 밥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먹어라. 봄에서 한여름 가을까지 그 여러 날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쌀 아닌가.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움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대원사 공양간(사찰의 부엌)에 있는 말씀이다. 밥을 절에서는 다른 말로 ‘공양’이라 한다. 공양이란 부처님·부처님의 가르침·스님에 공경하는 마음으로 음식이나 옷, 꽃, 향, 의약품 등을 올리는 의식 또는 그 물건을 말한다. 또 절에서는 밥 먹는 것도 공양이라 한다. 이 공양에는 누군가의 정성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공양할 때는 그 고마움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절에서는 밥을 다 먹고 나면 그릇에 묻어있는 부서진 밥알이나 양념까지 숭늉으로 잘 씻어서 그 물을 죄다 마신다. 공양의 소중함 때문이다. 그런데 공양은 단순히 불보살님에게 복을 구하고자 사람들이 정성을 올리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어머니의 고통 속에 태어나지만 그 순간부터 세상의 은혜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다.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 모든 생물들은 세상의 무수한 사람들, 생물, 무생물들로부터 은혜를 받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 경이로운 공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양을 올리는 것이다. 매일 마시는 공기 없이는 길어봤자 5분을 버티기 힘들고, 매일 떠오르는 태양의 은혜 없이는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없다. 우리는 바람과 비, 물, 디디고 사는 땅, 나무 등 대자연의 거룩한 공양을 받으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쌀을 생산하는 농부의 노고와 우리를 안전하게 태워주는 지하철, 버스, 택시 기사님들의 수고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밤에 동네 곳곳을 돌면서 악취가 풍기는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사람들, 주민의 안전을 위해 아파트를 지키는 경비 아저씨, 고된 몸으로 환자를 돌보는 간호사와 의사, 산업현장의 역군들 등등 우리의 이웃들이 나에게 끊임없이 베푸는 정성스러운 공양이 있기에 우리가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넘쳐나는 물질세계 속에 사노라면 지천에 늘려있는 나를 위한 공양들을 간과하고 살아가기 쉽다. 현대인들이 정작 잊고 사는 것은 이 은혜로운 공양이다. 가을이 깊다. 세상이 나에게 베푸는 고마운 공양에 미치지는 못하더라도 나도 누군가에게 베푸는 공양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돌아보자. 이웃에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든 사람이나 생명들이 너무나 많다. 그들도 필경에는 오랜 세월 전부터 나에게 은혜를 베풀었던 존재인 줄을 알아야 한다. 은혜로움과 고마움을 모르고 사는 것은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은혜로움과 고마움을 안다는 것은 우리는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으며 혼자 행복할 수 없다는 삶의 이치를 깨닫는 일이다. 지금의 나는 그 무수한 고마움과 은혜에서 잉태한 생명이다. 고마움과 은혜를 알고 나면 행복해지고, 삶이 편안해진다. 삶에 뭔가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기쁨이 묻어날 것이다. 혜총스님 / 감로사 주지. 실상문학상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