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성뉴스 / 혜총스님의 마음의 등불59
행복한 죽음
근래에 웰빙(well-being)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말 그대로 이 말은 잘 살다는 뜻이다. 자연친화적인 환경 속에 살면서 몸과 마음의 건강을 잘 유지하여 안정된 생활을 누리는 삶이다. 그렇지만 삶은 본질적으로 영원할 수 없다. 천년을 산다는 거북이도 죽을 수밖에 없듯이 우리는 죽음을 맞이하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이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이 죽음은 가장 큰 고통이면서 공포의 대상이다. 그래서 첨단과학이 눈부신 오늘에 이르기까지 죽음을 피하고자 명약을 찾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보지만 인간은 아직도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죽음이란 명제를 행복하게 맞이할 수 있다면 삶은 진정한 웰빙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웰빙의 끝에 웰다잉(well-dying)을 생각해보는 것이다. 삶의 여정이 행복하려면 죽음도 행복해야 하지만 사람들은 삶이란 현실 앞에 파묻혀 대부분 행복한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살거나 생각하는 것 자체를 피한다. 그러다가 병이 들고 육신이 멍드는 황혼 무렵에야 죽음의 공포를 예감하고 가끔씩 죽음과 마주하다가 죽음이 가자는 대로 속절없이 질질 끌려간다.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왜 우리는 죽음 앞에 한없이 초라해질까. 왜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없을까. 왜 죽음은 항상 우리를 내려다보고 우리는 그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할까. 그것은 우리가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때문이다. 죽음에게 비참하게 끌려가지 않고 당당할 수 있으려면 삶의 하나하나 순간순간을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당당한 삶이란 후회 없는 삶이다. 하늘을 향해 한 점 부끄러움 없는 양심만으로 살아왔기에 후회가 없는 삶이다. 그러나 온갖 인연들에 얽히고설켜서 오욕칠정(五慾七情)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인생이란 영화 속에 살면서 일말의 가책(呵責)도 없이 자신을 속이지 않고 살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바세계가 아닌가. 그러니 어떻게 작은 허물 하나라도 짓지 않고 당당한 삶을 살다가 일몰의 순간에 찾아온 죽음을 향해 당당하게 떠나자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과연 인류 역사 속에 몇 사람이나 죽음 앞에 당당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우리가 당당하게 살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 한다면 그것보다 부끄러운 삶은 없다. 적어도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이제 다 왔구나. 그럼 내려야지.’ 하는 여행자의 홀가분한 마음으로 세상의 마지막 마무리를 잘 하려면 평소 당당하게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 자식에게, 부모에게, 벗에게, 이웃에게 당당하게 살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살지 못해서 맞이하는 죽음이란 고통스럽다. 죽음의 그때를 맞이해서도 온갖 과거 인연들을 정리하지 못하고 이별을 아쉬워하고, 원망하고, 미워하면서 삶에 집착한다면 그보다 슬픈 죽음은 없을 것이다. 인생은 무상(無常)하다. 권세도 잠깐이고, 흥하다가도 멸하고, 실패했다가도 성공하고, 좋아하다가도 증오하는 것이 인생의 속성이다. 지금 이 순간들에서 착하지 못함을 버리고 소중하게 살아야 행복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혜총스님 / 감로사 주지. 실상문학상 이사장 |